[KOR] 방탄소년단과 올드 타운 로드 :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하다 / BTS and Old Town Road: Asserting Asian Identity in America

This is a translation of an article about BTS' performance on the Grammys Awards.
I really like this article so I hope all of you to read this. You'll love it too.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시상식 공연에 대한 님의 글 번역입니다.
최근에 본 글 중에 가장 정확하고 예리하게 그래미에 대해 분석한 글 같아요.

조금 길어 번역하기 힘들었지만, 제가 느낀 이런 좋은 감정을 여러분도 느끼셨으면 해서
요약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번역했습니다.

글이 조금 길어서 이런 저런 실수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틈틈이 다시 읽어 보고 오류는 수정하겠습니다.

Original Link/ 원문 링크: https://alapadma.home.blog/2020/01/26/bts-and-old-town-road-asserting-asian-identity-in-a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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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방탄소년단과 올드 타운 로드 : 방탄소년단이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해냈습니다.

오늘은 자칭 “음악계의 가장 큰 밤”인 그래미 시상식이 돌아오는 날입니다.(역주: 가장 큰 혹은 중요한 날이라는 뜻) 그래미 시상식은 보통 음악계를 들뜨게 해주지만, 올해 주최 측은 레코딩 아카데미에게 비리 그리고 성폭력 등과 같은 사안들에 대한 심각한 혐의가 제기된, 좋지 않은 시기에 있습니다. 아카데미가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부정하고 있지만, 그와 관련된 아카데미의 이미지 실추는 이미 일어났습니다 - 많은 공연자들이 그래미 시상식에 나타나는 것을 취소했고 시청자들은 그들이 양심의 가책 없이 그 시상식을 볼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 속에 남겨졌습니다.(역주: 레코딩 아카데미는 50여 년간 그래미상 수상을 주관해온 미국의 음반 산업 종사자 협회로, 정식 명칭은 National Academy of Recording Arts and Science(NARAS)이다.)

이러한 관료들의 부패로 인해 혼란한 상황 속에 처하게 된 것은 바로 올해의 시상식 쇼에 참가하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직원들입니다. 후보들, 공연자들, 쇼의 진행자, 제작진들 - 이 수천 명의 개개인들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을 바쳐서 이 그래미 시상식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곳에 참석하는 모든 아티스트들 가운데에서도 방탄소년단은 특별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끌었던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역주: 새 앨범 MOS7을 의미)에 대한 사진과 영상들이, 조금은 예상 밖의 방식으로 공개되며 방탄소년단의 아미들로부터 많은 논쟁들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이 한국 그룹은 릴 나스 엑스와 함께, 기념비적인 성공을 만들어낸 히트 곡인 "올드 타운 로드"를 공연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줬습니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음악 그룹인 방탄소년단의 이 시상식에서의 위치 - 릴 나스 엑스의 공연의 배경에서 연주하게 된 것 - 는 서양 무대들에서 비서구권 음악 그룹들이 받는 처우에 대해 아주 격렬한 논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미 시상식의 공연 티저들을 보면서 아미들은 아주 절박한 질문 속에 빠지게 됩니다. - 과연 이 시상식을 봐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레코딩 아카데미를 더럽힌 수많은 스캔들들과 이해 충돌, 그리고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가 이어져 온 아카데미의 역사와 더불어, 이 저명한 아시아 아티스트들을 마치 부차적인 존재로 대하는 그래미의 행동은 사람들로 하여금 누가 이 시상식을 보겠냐는 의문을 먼저 불러 일으킵니다.

하지만 혹자는 그래미 시상식은 평범한 시상식이 아니라고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그들이 어떻게 스스로에 대해 홍보하는 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다른 서구 시상식들보다  명망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미 시상식과 다른 서양 시상식들, 예컨대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빌보드 뮤직 어워드, 그리고 뭐 이제는 거의 사라져 가는 비디오 뮤직 어워드, 그런 음악 시상식들의 차이점은 이러한 다른 시상식들이 음악 그리고 대중성에 대해 기념하는 동안, 그래미 시상식은 일종의 힘에 대해서 기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권력과도 같은 영향력은 어떻게 상이 결정되는 지에서 시작해서(일반 대중들보다 소위 "비평가"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왠지 음악적 이해에서 더 큰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암시하면서) 누가 이 시상식에 참여할 수 있는 지를 결정하는 것까지(특히 대부분 일반 대중들을 제외하면서 초대를 받은 사람들만 온다는 점) 그래미 시상식의 모든 요소에 존재합니다. 과거에는 아카데미가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존재하는 음악들에 대한 분류, 그리고 "장르"를 만들며 비백인, 주로 흑인인 예술가들의 음악을 분리하면서 이러한 힘의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비록 음악의 분류 내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가시적인 변화가 있지만, 레코딩 아카데미의 특정 인종, 그리고 민족들에 대한 편견은 여전히 수상자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비욘세의 '레몬에이드" 대신 아델이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한 일이 있는데 이는 이것이 고의적이었든 아니었든 특정 인종 간에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냈고 결과적으로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권력과 재능에서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 권력은 미국 내 음악계의 문제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레코딩 아카데미 본인들도 어떻게 정의 내릴 지 모르는 것으로 보이는, "세계 음악"을 기념하는 한 카테고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제한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다지 놀랍지 않게도, 현 시점에서, 그래미 시상식에서 가장 많이 "세계 최고의 음악상"을 수상하는 국가는 마침 미국입니다. 미국이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밤"을 주관하고 여러 상들을 판단할 뿐만 아니라 비서구권 음악과의 경쟁에서 서구권 음악이 가장 최고로 남으면서 그들 자체의 권력을 보여줍니다.

그래미 시상식은 음악에서 서구권의 우월성을 행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이 시상식과 관련된 "명성"이라는 것은 이런 것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영역 안에서,  당신은 어떤 것이 국제적인 그룹이라고 생각합니까?

방탄소년단의 ‘올드 타운 로드’ 출연은 서구의 음악 산업계에 대해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이슈들을 보여줍니다. 과거의 경향들을 볼 때, 비서구권이나 비영어 음악들이 한때의 "밈" (역주: 한때 유행하는 것, 트렌드 정도의 의미)으로 여겨지거나 아니면 한번 인기를 얻고 말게 되는 것에는 분명히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다. 무시할 수 없는 라틴어 히트곡 "데스파시토"나 한국의 "강남스타일"의 엄청난 대유행이든 간에, "외국의 음악"을 서구권의 관중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는 수십 년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방탄소년단은 이런 자연적인 벡터가 없습니다.(역주: 서구권의 취향에 맞게 변화하는 것. 벡터는 수학이나 물리학에서 방향과 크기로 결정되는 힘을 말하기에, 이 글에서는 방향성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종종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대충 들어보고 그것이 서양 음악들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해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서양 관객들에게 맞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그들의 음악의 내용 그리고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과정에 접근하는 방식들은 여전히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루이스 폰시의 "데스파시토"의 경우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주장은 보통 사람들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강하지 않았습니다. 저스틴 비버가 부정할 수 없이 서양 관중들이 음악을 소비하기에 편안하도록 느끼게 하는 벡터 역할을 한 반면에, 그의 음악 자체는 푸에트 리코의 정체성의 맥락에서 백인 그리고 흑인 간의 복잡한 균형을 나타냈습니다. 흑인 사회에서 기원한 강한 레게톤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데스파시토"의 창작자들은 그것을 어딘가 "세련되게" 보이도록 만드는 시도를 했습니다. 이에 대해 웰즐리 대의 리베라 라이더우와 토레스 레슈닉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이는 "레게톤들의 어떤 성적인 평판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자 계층 그리고 그것을 주로 만든 흑인 사회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한 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노래 자체는 레게톤 그리고 흑인 음악에 대한 서구권의,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태도를 강화시켜주기 때문에 서구의 대중들에게 본질적으로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루이스 폰시는 데스파시토에서 흑인과 백인 간의 정체성 사이에서 협상할 뿐만 아니라 라틴계 남성들과 관련된 "라틴 사랑꾼"같은 고정관념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가 NBC 라틴 방송에서 '오 자기야, 내가 로맨틱할 때는 내가 에스파냐 말을 쓰기 때문에, 아주 장난 아니야'라고 말한 바 있듯이 "스페인어의 섹시함에 대한 가정을 영속시키고" 있습니다. "데스파시토" 자체가 미국의 관중들의 눈에 들기 위해 만들어 진 것에 비해, 비버의 벡터는 절반 정도만 작동했습니다.(역주: 해당 곡이 발표되고 같은 해에 저스틴 비버가 데스파시토를 약간 리메이크했었다.) 리베라 리더우와 토레스 레슈닉이 말하기를 "그 이전에 나왔던 다른 국경을 넘는 스타들처럼 폰시는 미국 주류 사회에서 유통되어 온 라틴계의 전형적인 고정관념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미국 주류 사회가 받아들이기 쉬운 음악가가 되었다."

'강남스타일'도 비슷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당초에는 세계적인 성공을 기대하지 않고 한국 시장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강남스타일'은 기존에 아시아인들이 인식되어온, 그들에 관한 고정관념 때문에 가까스로 서구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이 경우 희극적인 요소가 이 외국의 노래를 쉽게 소비되도록 하는 벡터로 작용했습니다. - 그 당시에 한국에서 매우 존경받고 이미 잘 알려진 아티스트였던 싸이는 미국 사회가 편안하게 느끼는 희극적인 요소를 표현했습니다. 크리스탈 앤더슨에 따르면 "그는 통통하고 행복한 사람이다. 우리는 아시아인의 남성성 구축에 도전하는 다른 아시아 남성들의 몸을 받아들일 수 없는 우리의 방식 그대로 그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 싸이와 그의 "강남스타일"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았습니다.-비록 그 노래의 강남에 사는 부유층에 대한 다소 풍자적인 논평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외국 아티스트의 작업물을 단순한 농담이나 "밈"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기회를 미국 사회에게 주면서 서양의 대중들이 그 노래를 그들 자신의 사회와의 관련성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합니다. 이 노래의 표현은 미국 사회가 아시아인들을 받아들이는 이미지와 완벽하게 들어맞고, 따라서 그렇게 큰 저항 없이 국경을 넘어 미국 시장으로 넘어오게 됩니다.

이 두 가지 예를 모두 고려할 때 방탄소년단을 ‘데스파시토’나 ‘강남스타일’의 맥락 안에 두기는 어렵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힙합과 랩에 뿌리를 둔 그들의 음악에서 보여지는 흑인 음악의 정체성을 희석시킬 만큼 "백인적"이지도 않으며, 미국들이 아시아인에 대해 가지는 개념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그들 자신의 한국적 정체성을 뭔가 이국적으로 만들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그들의 외모는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인들에게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괴짜, 광대, 깡패 혹은 무술가"같은 부류의 이미지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서양 사회의 우월성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둔 서양의 시상식들은 방탄소년단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먼저, 방탄소년단을 아예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주목할 만 합니다. -  그 한국 그룹을 그냥 무시해버리는게 그냥 아주 간단할 수도 있지만, 그들을 시상식에 포함시키면서 그래미 시상식의 순전한 자포자기를 보여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그 시상식이 그 자신을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밤"이라고 홍보한다면, 그러한 수식은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그룹 없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방탄소년단 그들 스스로도 레코딩 아카데미에 도전합니다. - 그들은 무시될 수 없으며, 그들을 시상식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래미의 중요성 그리고 그들의 음악적 이해에 대해 의문을 불러 일으키게 만듭니다. 다음으로는 방탄소년단의 정체성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미국 사회가 수용한 아시아인들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에 맞춰가지 않는 한국인 아티스트들입니다.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은 서양 대중들이 그들을 받아들이게 해줄 자연스러운 벡터를 가지지 않은 이례적인 변칙으로 존재합니다.

오늘 밤, 그래미 시상식에서 그런 식의 벡터가 그들에게 처방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올드 타운 로드"입니다. 음악계에서 인종과 장르에 대한 악랄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곡인 ‘올드 타운 로드’는 음악계에 거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텅-앤드-치크스러운 "밈"적인 노래일 뿐만 아니라,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적입니다. (역주: 텅-앤드-치크는 패션 용어로, 고전적인 것과 새로운 유행을 약간 풍자적으로 섞고, 때로는 그것을 엄청 과장해서 웃기게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패러디 패션을 의미한다.)

'올드 타운 로드'는 백인 아티스트들이 장악하고 있는 장르인 컨트리 음악에서 어떤 인종과 장르가 그 컨트리 뮤직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왜 힙합 사운드가 컨트리 송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었는지, 그리고 왜 흑인 아티스트가 컨트리 음악의 스타가 될 수 없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제기했습니다. 그것은 컨트리 음악계가, 흑인 음악가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 자신의 뿌리를 인지할 것을 말하며 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따라서 "올드 타운 로드"는 하나의 곡에 흑인과 백인의 정체성 모두를 반영합니다; 그것은 백인이 지배적인 장르에서 흑인들의 표현에 대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다루고, 주로 백인들이 지배하고 있는 음악 산업이 흑인 음악가들의 공헌을 똑바로 인지하게 합니다.

방탄소년단을 백인과 흑인의 정체성의 맥락 안에 두는 것은 아시아의 정체성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사회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수 년간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너무 하얗다"거나 "너무 까맣다"는 말로만 표현되어 오는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종종,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그러한 인식들 사이에서 자신들의 길을 찾기 위해 음악을 사용합니다. 이때 그들은 "순수성" 그리고 "모델 마이너리티"와 같은 그들에 대한 인식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힙합의 형식을 채택합니다.(역주: 모델 마이너리티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똑똑하고 조용하고 모든 것들을 어떤 도움도 없이 척척 해낼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편견은 1960년대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그들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하며 이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인권 운동을 멈추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은 설명일 수 있지만, 아시아계라면 수학을 잘할 것이라는 생각도 이런 식의 편견의 일종입니다.) 동시에, 흑인 사회와 너무 많은 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적 도용이라며 비난받을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는 만약에 흑인들의 문화가 제대로 이해받고 존중받는다면 확실히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에게 있어서, 백인과 흑인의 정체성 표현 사이의 맥락에서 인식되는 아시아적 정체성의 배치가 그 자체만큼(역주: 위에서 언급한 것만큼)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이러한 맥락 밖에서 "너무 백인스럽다"거나 "너무 흑인스럽다"고 여겨질 때보다 훨씬 더 쉽게 이곳에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비록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협업에 참여하고 있지만, 다른 누구보다도 방탄소년단에게 이는 미국 시장에서의 중요한 경험의 한순간입니다. 이 중요한 미국 노래의 공연은 이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축하받을 수 있도록 보증해줍니다. 방탄소년단에게 있어서, 그것은 좀 어긋난 노력이 됩니다. 그들의 한국적 정체성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이 일반적인 외국 아티스트들이 그러한 것보다 더 깊고 대중적인 음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기에, 방탄소년단을 아는 사람들은 서양 노래의 엑스트라 정도로 자리한 그들의 공연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질 것입니다.

방탄소년단의 그래미 시상식 공연 발표에 대한 아미들의 반응은 이렇게 완전히 설명되었습니다. 그런 반발하는 듯한 반응들은 앞서 언급하는 바와 같이 그들의 정체성과 조금 어긋나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느껴졌고, 그리고 그렇게 들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레코딩 아카데미와 미국의 관중들이(아카데미가 이해하는 관점에서의 미국 관중들)이 어떻게 방탄소년단을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러한 문제들과 방탄소년단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그런 미국 노래들과 있을 때 그들을 어색하게 보이게 하는, 미국 대중들의 입맛대로 변하려는 노력의 부족 또한 이 공연을 더 모욕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자마자, 내가 처음에는 방탄소년단을 미국인들의 정체성에 맞추는 벡터 속으로 집어 넣으려는 시도라고 생각했던 것은 방탄소년단이 그들 자신의 정체성을 미국 사회 내에서 주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공연은 조금 위험했었습니다: 영향력 있는 아시아의 아티스트로서, 미국 음악 속에서 고전적인 엑스트라 역할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의 자신의 본질을 의문에 빠트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체성과 조금 어긋나보이는 행보를 걷는 것은 방탄소년단에게 아주 끔찍한 결과를 줬을 수도 있고, 서방 세계가 그들은 단순한 "밈" 문화나 일시적인 유행 정도로 취급하도록 만드는 기회를 줬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게도 미국적인 곡에서, 방탄소년단은 여전히 그들의 한국적인 정체성을 확고히 드러냈습니다. 이 아시안들은 누구나 예측해왔을, 서구 세계의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희석되지도 않았고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을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 대신에 RM의 한국어로 된 재치있는 가사, 남산 타워를 보여주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역주: 풍경 정도의 의미), 미묘한 안무, 그리고 제목을 "서울 타운 로드"로 바꾸는 영리한 선택은 이러한 환경에서 종종 가려지는 바로 그 아시아적인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이 아시아적 정체성이 여전히 백인과 흑인의 정체성 사이에 놓여져 있지만, 아티스트 사이의 일종의 권력 관계는 아주 명확했고 방탄소년단은 무대에 오른 다른 어떤 아티스트들보다도 더 뚜렷한 그들만의 본질 그리고 그들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그래미 시상식 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서는 무엇이 옳다 혹은 그르다고 말할만한 답이 없습니다.-시상식을 보는 것은 수적으로 레코딩 아카데미에 대한 지원으로 보일 것이지만, 보지 않는 것은 수 년 동안 이 순간을 꿈꿔왔을 많은 예술가들의 고된 작업을 수동적으로 묵살해버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어떤 선택에서든 양심에 조금 거리끼는 느낌이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방탄소년단에게도 주어질 수 있습니다 - 그렇지만 과연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요? 다른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요? 방탄소년단은 서구 산업이 그들에게 준 벡터 안에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벡터 안에서도, 그들은 글로벌 플랫폼에서(역주: 그래미 시상식 공연) 자신의 정체성을 의식하는 진정한 예술가인 자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드러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가진 유일한 선택권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 그리고 그 중 후자는 결코 미국 사회 내에서 아시아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미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이 잃은 유일한 단 한 가지는 딱히 주최 측 본인들이 으스대는 것만큼 명망있지 않은 상들뿐입니다. 투표 과정에서 부족한 다양성과 청렴성을 보여주는 투표 위원회뿐만 아니라, 그래미 시상식의 전체적인 생각들은 방탄소년단 그리고 그들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과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이번만은, 그 시상식에서 다른 어떤 서양 아티스트들보다도 훨씬 더 강한 힘을 가진 비서구권 그룹이 서양의 기법으로 그들 자신을 보여줬습니다. 이 한국의 그룹은 서양 아티스트들을 영광스럽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플랫폼에서 그들의 아시아적 정체성을 표현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따를 전례가 없었고, 그래미도 방탄소년단을 어떻게 적절하게 담아낼 지 잘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일로 그래미가 그렇게나 소중히 간직해왔던 자문화 중심주의적인 거품이 말 그대로 터져 버렸습니다.


참고 문헌

- 참고 문헌 제목은 찾아보시기 편하게 원문 그대로 둡니다.
밑에 간단한 설명이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Rivera-Rideau, P., Torres-Leschnik, J.  (2019) “The Colors and Flavors of My Puerto Rico: Mapping “Despacito’s” Crossovers.” Journal of Popular Music Studies, 31(1), 87-108. Google Scholar. 
: 푸에르토 리코 문화와 관련해 "데스파시토"를 분석한 서적
Cheah J., Kim G.JS. (2014) “Laughing at Psy.” In: Theological Reflections on “Gangnam Style”: A Racial, Sexual, and Cultural Critique. Asian Christianity in the Diaspora. Palgrave Pivot, New York. Google Scholar. 
: 강남스타일에 대한 신학적 고찰, 인종 성적 그리고 문화적 관점에서의 비평을 담은 아시아계 기독교 서적
Matsue, Jennifer M. (2013) “Stars to the State and Beyond: Globalization, Identity, and Asian Popular Music.”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72(1), 5–20. Google Scholar. 
: 글로벌 시장에서 아시아계 음악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다룬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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